에티오피아 고원을 가로지르는 아와시강 상류, 해발 2,000~2,200미터의 강줄기를 따라 플라이스토세의 고고·고생물 유적들이 모여 있습니다. 멜카쿤투레와 발치트라는 두 이름으로 묶인 이 유적군에는 200만 년 전부터 사람과 그 옛 조상·친척을 아우르는 호미닌 무리가 머문 흔적이 네 단계의 석기 문화로 차곡차곡 쌓여 있습니다.
| 항목 | 내용 |
|---|---|
| 등재연도 | 2024년 |
| 국가 | 에티오피아 |
| 소재지 | 아와시강 상류, 아디스아바바에서 남쪽으로 50킬로미터 |
| 분류 | 세계문화유산 |
| 핵심가치 | 올도완부터 후기 석기 시대까지 네 단계가 한 지역에 이어진 문화 연쇄 |
📜 역사 — 발견에서 등재까지
이 땅은 1963년에 발견되었습니다. 이듬해 제라르 바이유가 현장을 둘러보았고, 장 샤바용이 이끄는 프랑스 조사단이 1965년부터 1982년까지, 다시 1993년부터 1995년까지 체계적으로 탐사했습니다.
1999년부터는 마르첼로 피페르노가 이끄는 이탈리아 조사단이 뒤를 이었습니다. 이탈리아 외무부와 로마 라사피엔차 대학교의 이 조사단은 에티오피아 문화유산 연구보존청, 오로미아 문화관광국과 합의해 현장에서 일해 왔습니다. 고고학자들이 멜카쿤투레에서 찾아낸 점유 유적은 30곳이 넘습니다.
2024년 세계유산 목록에 오를 때 가치를 뒷받침한 기준은 모두 셋입니다. 한 지역에 차례로 남은 긴 문화의 순서, 화산 퇴적층 아래 묻힌 옛 경관이 알려 주는 고원의 환경과 삶, 그리고 오래도록 이어진 흑요석 채취와 이용의 기록입니다.
🗻 땅 — 화산과 강이 겹겹이 덮은 지층
멜카쿤투레가 속한 분지는 넓이가 3,000제곱킬로미터 안팎이며, 플라이오세에 생긴 화산들이 둘레를 두르고 있습니다. 북쪽의 와차차와 푸리, 남쪽의 보티와 아고이아비가 주요 화산입니다.
유적의 땅은 강물이 실어 온 퇴적물과 화산에서 비롯한 퇴적물이 번갈아 쌓이고 그 사이에 응회암이 끼어든 지층입니다. 눈에 보이는 퇴적층의 두께는 30미터 안팎이지만, 여러 층을 모두 합하면 100미터쯤 됩니다. 아와시강은 큰 화산 활동이 있을 때마다 물길을 다시 잡았고, 강과 지류가 다시 옮겨 쌓은 화산 물질이 유적을 덮어 지켜 냈습니다.
그렇게 묻힌 옛 경관의 조각에는 동물과 식물의 화석이 함께 남아, 플라이스토세 고원의 고산 생태계를 되살려 볼 수 있습니다. 출토품의 연대는 북동쪽 주콸라산의 분화가 남긴 퇴적물로 매깁니다. 응회암의 연대를 재면 그 사이에 끼인 문화층의 연대기를 세울 수 있습니다.
⚡ 특징 — 네 단계의 석기 문화와 흑요석
이곳의 문화는 올도완, 아슐리안, 중기 석기 시대, 후기 석기 시대의 순서로 이어집니다. 아프리카 아슐리안의 후기 단계는 곰보레 2 일대의 여러 유적이 잘 보여 주며, 연대는 약 80만 년 전입니다. 가장 늦은 아슐리안 유적은 약 50만 년 전의 가르바 1이고, 약 20만 년 전의 가르바 3은 중기 석기 시대로 넘어가는 과도기 유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화석 인류의 뼈도 이 층들에서 나왔습니다. 곰보레 1에서는 호모 에렉투스에 가까운 개체의 위팔뼈 조각이, 가르바 4에서는 같은 계통에 가까운 아이의 아래턱뼈 반쪽이 나왔습니다. 곰보레 2에서는 호모 에렉투스의 머리뼈 조각이, 가르바 3에서는 초기 호모 사피엔스의 머리뼈 조각이 발견되었습니다. 유네스코는 연대가 잘 밝혀진 유물과 화석이 함께 나와 초기 호미닌 집단의 인지 능력이 자라난 과정을 비춰 준다는 점을 높이 삽니다.
석기의 재료가 된 흑요석의 산지는 발치트입니다. 멜카쿤투레에서 7킬로미터가 채 안 되는 이 노두는 가장 이른 올도완 단계부터 중요한 원료 산지로 쓰였고, 채취는 역사 시대까지 이어졌습니다. 아슐리안 층에서 나온 흑요석 도구는 품질이 높고 규격이 고른데, 유네스코는 이것이 전문 제작지가 생겨났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봅니다.
"멜카쿤투레와 발치트의 플라이스토세 고고·고생물 유적군은 올도완, 아슐리안, 중기 석기 시대, 후기 석기 시대라는 연속된 네 기술 복합체 단계로 이루어진 예외적으로 긴 문화 연쇄를 한 지역 안에 보존한, 세계에서 유일하게 알려진 곳이다."
🧐 보존 — 강물과 모래 채취 사이에서
고고·고생물 퇴적층과 깊은 지층은 전반적으로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발굴된 범위가 작아 유적의 맥락이 온전하고, 연대를 가늠하게 해 주는 응회암 지층도 흐트러지지 않았습니다. 발굴을 마친 구역은 한 곳을 빼고 모두 다시 흙으로 메웠으며, 남겨 둔 한 곳은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열어 두었습니다.
그래도 위협은 있습니다. 아와시강이 철마다 넘치면서 유적 일부가 조금씩 깎여 나가고, 몇몇 구역에서는 모래 채취가 퇴적층의 온전함을 흔들고 있습니다. 정착지가 넓어지고 기반 시설이 들어서는 흐름도 지켜봐야 합니다. 앞으로 연구할 가치가 있는 땅은 완충 구역에 넣어 개발과 농사의 잠식을 막으려 했습니다.
유적은 국가에 등록된 문화유산이자 국유지이고, 모든 구성 요소와 완충 구역은 규정 제159/2013호로 보호됩니다. 최상위 관리는 오로미아 문화관광국이 문화유산 연구보존청과 함께 맡고, 현장에서는 행정보존사무소가 날마다의 관리를 담당합니다. 2022~2027년 관리 계획은 협의를 거쳐 마련되었고, 지역 공동체도 관리와 개발에 참여합니다.
📚 정리
- 네 단계의 석기 문화 — 올도완에서 후기 석기 시대까지가 한 지역에 차례로 남았습니다.
- 화석 인류 — 호모 에렉투스부터 초기 호모 사피엔스까지, 연대가 분명한 층에서 나왔습니다.
- 고원의 인류 — 해발 2,000~2,200미터의 고산 생태계에 적응한 이른 증거입니다.
- 응회암 — 옛 경관을 덮어 지켰고, 문화층의 연대를 재는 시계가 되었습니다.
- 발치트의 흑요석 — 올도완 시기부터 역사 시대까지 쓰인 화산 유리의 산지입니다.
고원의 강가에서 사람들은 까마득한 세월 동안 같은 돌을 찾아 쪼개고 다듬었습니다. 화산재가 한 번 덮어 준 그 기록을 이제는 사람의 제도가 지켜야 할 차례입니다.